1. 아침 늦게 일어나 아침도 안 먹고 멍하게 컴퓨터로 뉴스 보고 있으려니 어머니께서 영어 수업 가시면서 공과금 납부 심부름을 맡기셨다. 당신께서 가실 수 있지만 내가 집에만 있으니까 일부러 심부름 시킨다는 덧붙임과 함께. 그러고 보니 외출한 지 일주일 쯤 된 것 같다(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머니는 내가 늘 집에만 있다고 걱정하신다. 난 집에만 늘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정말인지 내 착각인지는 모를 일.
2. 생각보다 날씨 좋았다. 난 집에 있을 때 꽤 춥기에 바깥도 추운 줄 알았더니 살짝 선선한 정도. 늦가을 날씨였다. 바깥 공기는 집과 다른 냄새가 났다.
3. 늦은 점심 시간이라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은행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은행에 들어서자 창구 직원과 안내 직원이 모두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유치원에 온 꼬마처럼 나도 크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뒤통수에 시선을 느끼면서 일을 보고 나오자 직원들이 또 모두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 사람들한테 별 도움 받은 일은 없지만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4. 은행이 있는 블록은 사거리를 기준으로 우리 아파트 남동쪽 블록이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가려면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해서 심리적 거리가 꽤 있다. 횡단보도마다 신호를 한참씩 기다려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같은 건물에 있는 빵집에도 자주 가지는 않는다(애초에 빵집에 자주 가지 않지만). 이 빵집은 프랜차이즈가 아닌데 빵이 맛있어서 가족들이 다 좋아한다. 난 빵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바뀌지도 않아서 조금 아쉽지만 동생이 말하길 팔리는 빵은 다 갖춰져 있으니까 괜찮다고. 어쨌든 간 김에 내가 먹을 양파 베이글이랑 어머니 드릴 클로렐라 빵을 사왔다. 나는 빵집에 갈 때마다 빵을 한 개만 사서는 안 된다는 이상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압박을 받는다.
5. 내가 이사 올 때 토스트 가게였던 가게는 분식집으로 바뀌어 한참 장사를 하다가 얼마 전 횟집으로 바뀌더니 곧 간식 가게로 바뀌었다. 간식 가게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분식집이라고 하기에는 메뉴가 다르다. 떡볶이는 팔지만 순대나 튀김은 안 팔고, 커피랑 과일 주스는 팔지만 카페는 아니고, 토스트, 주먹밥, 국수도 판다. 오다가다 간판만(차양에는 아직 ○○ 토스트라고 적혀 있고 정식 간판 대신 횟집 간판 위에 현수막을 덧붙여 두었다) 본 가게지만 떡볶이와 순대가 먹고 싶어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들어가봤다. 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앉아 있었다. 떡볶이 포장되냐고 묻자(이때 순대가 없고 다른 메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포장은 되지만 자기는 가게 주인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게를 나서려니 그 엄마는, 곧 돌아오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어색하게 멍하게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 주인이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부랴부랴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고(다른 분식집처럼 미리 만들어 두지 않고 바로 조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다시 창 밖을 멍하게 보며 주먹밥이나 토스트도 사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오늘 날씨 좋죠라고 물어보는 주인과 네라고 대답하는 나. 대답이 짧지 않았나 하고 고민했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메뉴도 고르지 않았다.
6. 창 밖에 고양이가 보였다. 희고 검고 주황색인 고양이. 아파트 건물 앞에 있는 화단에서 주위를 살피며 가만히 — 고양이 특유의 얼어붙은 듯한 자세로 — 앉아 있었다. 앞발 하나를 마네키네코처럼 들고 있어서 귀엽다고 생각하며 바라봤다. 잠시 후 자리를 뜨던 고양이는 그 발을 사용하지 않고 계속 몸에 붙인 채 세 발로만 뛰어 사라져갔다.
7. 떡볶이를 받아 들자 주인이 내게 바쁘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인사하고 가게를 나섰다. 집에 와서 밥과 먹은 떡볶이는 맛이 괜찮았다. 내겐 조금 매웠지만. 떡볶이를 먹으면서, 점심을 먹지 않아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자세히 설명했어야 했을까 생각했다. 호의나 부탁을 거절할 때 마음이 한참 불편한 이유는 내가 호의나 부탁을 건넬 때 온갖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8. 『수, 과학의 언어』를 읽고 있었다. 두 번째로. 이번에도 역시 20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 포기할까 고민을 한 이틀 한 듯. 내 수학 회로가 완전히 사라졌나, 50년대에 나온 책이 내게 맞지 않나, 번역이 후진가 한참 고민했지만 결국 못 읽은 내 탓이다. 꼭 읽어 내겠다는 각오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릴 적부터 싫어하던 수학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기를 기대했었는데 아쉽다. 다른 책을 골라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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